용팔이 김용남 | 용팔이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 정치깡패 용팔이 김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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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1. 정치깡패 용팔이 김용남
용팔이 김용남은 1950년 2월 2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와 싸움에 연루되어 퇴학당한 경험이 있지만, 역도 선수로 전국체전 금메달을 획득할 정도로 뛰어난 체력을 가졌다.
1975년부터 ‘전주파’ 조직의 두목으로 성장해 국내 최대 폭력조직으로 키웠으며,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동자로 이름을 알렸다.
출소 후 경기도 가평과 대전 등지에서 사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2002년 개신교에 귀의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사회봉사와 신앙 간증 활동을 이어가며 삶의 방향을 바꿨다. 2014년 방화 사건으로 구속됐으나 현재는 교회를 운영하며 활동 중이다.
2. 용팔이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1987년 4월, 통일민주당이 창당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직폭력배들이 난입해 사무실을 파괴하고 당원들을 폭행했다. 당시 김용남이 이끈 폭력배 100여 명이 20여 개 지구당 사무실 중 18곳을 공격하는 대규모 난동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부의 안기부가 개입한 정치 공작으로 밝혀졌다. 신민당 내 대통령 직선제와 내각제 개헌 갈등 속에서 김영삼, 김대중 등 야권 분열을 막기 위한 조직적 방해였다.
경찰은 초기에 사건을 무시했고 언론도 내분으로 왜곡 보도했다. 검거는 사건 발생 1년 후에야 이뤄졌으며, 이후에도 수사는 미흡했다가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재조사되며 전두환 정권 배후가 드러났다.
3. 용팔이 사건 배후 전두환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핵심 인물인 장세동 안기부장이 주도했다. 1987년 당시 야권이 강력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안기부가 폭력배를 동원해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했다.
장세동은 신민당 내 이택돈, 이택희 의원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해 폭력 배후를 조작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이용구 등이 폭력 조직에 자금을 전달하고 창당 방해를 실행했다. 장세동은 검찰 조사에서 단독 행동을 주장했으나 실질적 배후임이 확인됐다.
전두환 본인의 직접 개입 증거는 없으나, 이 사건은 그의 정권 유지와 야당 분열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정치 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4. 용팔이 근황 목사
김용남은 1991년 출소 후 사업에 도전했으나 잇따른 실패를 겪었다. 2002년 작곡가 조운파의 도움으로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 감화받아 개신교에 귀의하며 전도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신앙 간증집을 내고 ‘주먹이 운다 시즌 2’에도 출연하며 갱생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3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오정현의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해 방화 난동을 일으켜 구속되었다.
2014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나 곧 법정 구속되었고, 이후 ‘강남사랑의교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사죄와 후회를 표했다. EBS 화해프로젝트에서는 옛 조직원과의 화해 이야기가 방영되기도 했다.
5. 김근식 전한길 용팔이 비유
김근식은 국민의힘 정치인으로, 2024년 전당대회에서 전한길 전 강사의 연설 방해 사건을 ‘용팔이 깡패’와 같다고 직격했다. 난동을 부리며 ‘배신자’ 구호를 유도하고 선동한 행동이 과거 조직폭력배의 폭력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김근식은 이 같은 정치 깡패식 행위가 민주정치에 해악을 끼친다고 경고했으며, 전한길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윤리적 제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전한길은 자신을 피해자로 주장하며 김근식 징계를 요구했으나, 내부 갈등과 긴장만 키우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과거 ‘용팔이’ 사건을 상기시키며 정치권 내 폭력성과 혼란을 다시 드러냈다.
용팔이 김용남 | 용팔이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