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삼호교 붕괴 | 삼호교 붕괴 원인 울산 태화강 비피해
- 울산 삼호교 붕괴
- 삼호교 붕괴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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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산 삼호교 붕괴



2025년 7월 20일 저녁 8시 48분경, 울산 중구와 남구를 연결하는 구 삼호교에서 상판과 교각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1924년에 완공되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이 교량은,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구조물 중에서도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사흘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상승했고, 급류에 따른 유속 증가로 인해 교각 하부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 구조물의 하중을 견디던 상판은 결국 20m 가량 침하됐고, 일부 구간은 2m 가까이 가라앉아 육안으로도 명확한 변형이 확인된다.



사건 직후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장에 출동하여 즉시 통행을 전면 통제했고, 하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에 대해서도 접근이 금지되었다. 현재까지는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조물 붕괴의 충격은 시민들의 생활은 물론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 다리는 단순한 보행 통로를 넘어 울산의 문화적 상징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군수산업 지원을 목적으로 건설된 이 구조물은,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울산 최초의 근대 교량으로 지정되어 국가등록문화유산 제104호로 등록돼 있다.
2. 울산 삼호교 전면 통제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은 구 삼호교의 남구와 중구 양방향 진입로를 모두 통제했다. 교각 침하가 발생한 구간은 삼호동 쪽 남단에 인접해 있으며, 다리 상판 약 20m 정도가 1~2m 가까이 가라앉아 구조적 안정성이 크게 저해된 상태다.
중구청은 오후 9시 38분께 재난문자를 통해 시민들에게 우회 안내를 발송했고, 인근 도보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까지 포함해 하부 접근 자체를 차단했다. 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통제는 단기적 불편을 야기하지만,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긴급 조치로 볼 수 있다.



구조기술사가 현장에 투입되어 긴급 정밀진단을 시행 중이며, 추가 붕괴 위험성에 대비해 주변 지역은 계속해서 감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통제 조치는 물리적인 이동 제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량 자체가 울산시민들에게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통제로 인한 정서적 파장 역시 적지 않다. 태화강의 흐름 위에 세워져 오랫동안 중구와 남구의 생활을 이어온 이 통로는, 더 이상 일상적인 보행로의 개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3. 울산 삼호교 붕괴 원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최근 사흘간 집중적으로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다. 울산 전역에는 330mm 이상 비가 내렸으며, 특히 태화강 수위가 급상승하면서 유속이 현저히 빨라졌다.
이 강한 수압은 교각 하부를 압박했고, 결국 구조물 하중을 지탱하던 지지 기반이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상판을 지탱하던 일부 교각이 무너졌고, 20m가량의 다리 상판이 침하하게 됐다.



구조적으로는 이미 2년 전 정밀안전진단에서 C등급 판정을 받은 바 있으며, 지난 5월부터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처럼 구조적 취약성에 이미 노출되어 있던 상황에서 폭우라는 외부 충격이 겹쳐지며 급격한 붕괴로 이어진 셈이다.
다리의 연식과 구조 방식, 그리고 지속적인 하중 누적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하천의 침식 작용은 지표면 아래로 확장되며 기초구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고, 이번 사태는 그 현실적인 결과로 드러났다.
4. 울산 삼호교 역사



1924년 건설된 이 교량은 울산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길이 230m, 폭 5m 규모로 태화강을 가로지르며 일제강점기 군수 물자 수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초기에는 차량 통행도 가능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보행자 전용 교량으로 기능이 전환되었고, 2004년에는 국가등록문화유산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이 다리는 단순한 교량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도시 성장의 출발점이자, 태화강과 함께한 근대 도시 울산의 태동을 상징하는 구조물로서 도시민들의 정체성과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아 왔다.



다리를 통과하는 수많은 발걸음과 시간의 흐름은 울산의 산업화, 현대화, 그리고 도시화 과정을 모두 담고 있다. 강을 사이에 둔 중구와 남구를 잇는 역할은 물리적 연결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연결의 의미도 함께 지녔다.
5. 울산 태화강 폭우 피해



사흘간 이어진 기록적인 폭우는 울산 전역에 걸쳐 큰 피해를 남겼다. 태화강은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범람했고, 둔치의 산책로와 주차장 등은 순식간에 흙탕물로 잠겼다.
일부 차량은 둥둥 떠다니며 구조 요청이 이어졌고, 급류에 휩쓸려 고립된 주민들은 밤새 공포 속에 시간을 보냈다. 울주군의 일부 마을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고, 차량과 가재도구는 물에 잠기거나 유실되었다.



문화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2년 만에 또다시 완전히 물에 잠겼고, 보호 대책의 시급성이 다시금 제기되었다.
아파트 단지 인근의 지하 주차장 역시 침수 피해를 입어 입주민들이 새벽부터 구조를 요청해야 했고, 울주군의 한 사찰에서는 산사태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도심은 물론 교외 지역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입은 이번 재난은, 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대응 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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