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자 별세 아들 배우 남편 사망 천국보다 아름다운 사랑과 전쟁
- 장미자 별세
- 장미자 아들 남편 박웅
- 장미자 사랑과 전쟁
1. 장미자 별세
배우 겸 성우로 활발히 활동했던 장미자 배우가 2025년 1월 27일 오전 서울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으며 삶을 마감했다. 향년 84세로, 한국 방송계와 연극계에서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묵묵히 걸어온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안겼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오랜 지병을 앓아온 끝에 가족의 곁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졌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4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오랜 시간 함께했던 동료와 제자들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별을 고했다. 발인은 1월 29일 오전 6시에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정해졌다. 장례는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장으로 치러졌고, 수많은 방송가 인사들이 함께하며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2. 장미자 사망원인
장미자의 사망 원인은 지병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병명은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으나, 한 방송계 관계자는 장기간 병세가 지속되었고 최근 들어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끝까지 연기를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료들은 존경과 경이로움을 함께 표현했다. 생전 마지막 무대였던 2023년 연극 ‘춤추는 은빛 초상화’에서도 무대 위에서 단단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점은, 병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직업 정신을 방증한다.
고인은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연기를 계속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이 모습은 후배들에게 깊은 귀감이 되었다. 방송계에서는 “고인의 사망은 단순한 개인의 타계가 아니라, 한 시대의 막이 내린 것과도 같다”는 평가를 내리며 숙연한 분위기를 전했다. 지병으로 인한 별세는 안타깝지만, 연기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예술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감동을 남겼다.
3. 장미자 아들 남편
장미자의 가족으로는 배우 박웅과 두 아들이 있다. 고인과 박웅은 동아방송 성우 시절 처음 인연을 맺은 후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함께 무대에 오르며 대한민국 대표 연예계 잉꼬부부로 널리 알려졌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단순한 부부의 연을 넘어, 예술가로서 서로의 작품에 깊이 관여하고 조력한 관계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2023년 마지막으로 출연한 연극 ‘춤추는 은빛 초상화’에서는 박웅과 함께 무대에 올라, 노년의 연기 인생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뜻깊은 장면을 연출했다. 두 아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장례 절차를 함께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는 점에서 가족 간의 깊은 유대감이 엿보인다. 특히 박웅은 오랜 세월 고인의 곁에서 동료이자 인생의 반려로서, 또 예술적 동지로서 평생을 함께해왔다. 방송계와 연극계에서는 두 사람을 “연예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평하기도 했다.
4. 장미자 배우 프로필
- 이름 : 장미자
- 생년월일 : 1941년 2월 3일
- 사망일 : 2025년 1월 27일(향년 84세)
- 데뷔 : 1962년 연극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
- 학력 :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 경력 : DBS 동아방송 성우 1기 (후에 KBS 6기로 통합)
- 가족 : 남편 배우 박웅(남편), 아들 2명
- 수상 : KBS 연기대상 특별상, 한국방송성우상 공로상 등
장미자 배우는 1941년 2월 3일 출생해 2025년 1월 27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2년 연극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1963년에는 DBS 동아방송 공채 1기 성우로 선발되며 방송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후 19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KBS 성우 6기로 재편되었고, 이후에는 배우와 성우를 오가며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방송뿐 아니라 연극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왔으며, 특유의 깊이 있는 연기력과 중후한 음성은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5. 장미자 배우 작품 활동 천국보다 아름다운
장미자는 성우와 배우로서 60여 년에 걸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드라마 분야에서는 ‘토지’(1987), ‘제2공화국’(1989), ‘서울뚝배기’(1990), ‘TV 손자병법’(1990), ‘비가비’(1992), ‘솔약국집 아들들’(2009), ‘사랑을 믿어요’(2011), ‘눈이 부시게’(2019), 그리고 유작이 된 ‘킹더랜드’(2023)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연극계에서도 ‘금삼지혈’, ‘이괄과 흥안군’, ‘춤추는 은빛 초상화’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무대 배우로서의 내공을 드러냈다. 영화 ‘반금련’(1981)과 ‘내가 살인범이다’(2012)에서는 감초 역할과 진중한 인물을 넘나들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우로서는 특유의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수많은 더빙작에 참여하며 존재감을 발휘했고, TV 광고와 내레이션에서도 활약했다. 각기 다른 매체에서 보여준 연기 색깔은 항상 새로웠고,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활동은 “한국 연기자 중 가장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라는 평가로 이어졌으며, 작품 하나하나가 대중과 소통한 귀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6. 장미자 국민 시어머니 사랑과 전쟁
장미자의 대중적 이미지가 전국민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단연 KBS2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에서의 시어머니 역할이었다. 엄격하면서도 정 많은 시어머니 캐릭터는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 인물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으로, 당시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공감과 호응을 얻었다. 이 연기를 계기로 ‘국민 시어머니’라는 별칭이 붙었으며, 이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장면마다 눈빛, 말투, 몸짓 하나까지 계산된 듯 정밀하게 짜여진 연기는 단순한 연기를 넘어 마치 현실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자아냈고, 많은 이들이 “우리 엄마 같다”, “우리 시어머니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사랑과 전쟁’은 고인이 연기자로서의 재도약을 이뤄낸 결정적인 작품이자, 이후 노년기 활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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