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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대선 출마
- 황교안 나이 프로필
- 황교안 부정선거
1. 황교안 대선 출마
2025년 4월,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출마 선언은 서울 용산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이뤄졌으며, 주요 메시지는 ‘부정선거 척결’과 ‘자유민주주의 수호’였다. 황교안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국민의힘이 부정선거 문제를 외면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민적 분노와 정의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출마라고 강조했다.
특히 "자유대한민국 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으며, 이를 위해 ‘자유민주원팀혁명위원회’, ‘부정선거방지 특수전사령부’, ‘부정선거부패방지대’ 총괄대표로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대선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황 전 총리의 출마는 단순한 정계 복귀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선거의 공정성과 체제 수호를 전면에 내세운 이례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2. 황교안 나이 프로필
- 이름 : 황교안
- 나이 : 만 68세 (1957년 4월 15일생)
- 고향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
- 학력 : 서울봉래초등학교, 서울 광성중학교, 서울 경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석사, 수도침례신학교 신학 석사
- 종교 : 개신교(전도사)
- 재산 : 33억원(2025년 대선 출마 시 신고 금액)
- 황교안 페이스북 SNS : https://www.facebook.com/promisehwang/
황교안 전 총리는 1957년 4월 15일에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서 태어나 2025년 현재 만 68세다.
서울봉래초등학교, 서울 광성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수도침례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종교는 개신교이며, 전도사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고 2025년 대선 출마 당시 신고된 재산은 약 33억 원에 달한다.
3. 황교안 법조 경력
황교안 전 총리는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입문했다.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첫 발을 디딘 후, 주로 공안 분야에서 활약했다.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등 다양한 요직을 거치며 검사로서의 실무 역량을 쌓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구고등검찰청과 부산고등검찰청의 검사장을 역임했다. 부산고검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학문적 성향이 강한 인물로, 법서 집필과 번역서 출간 등 학술 활동도 병행해 왔다. 특히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에는 후배 법조인 양성을 위해 다양한 법률 교육에 매진한 바 있다. 이러한 법조 경력은 이후 공직과 정치 영역에서의 법무 행정과 국가 운영 능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법률가로서의 이력은 지금도 정치적 발언과 정책적 방향 설정에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4. 황교안 법무부장관
황교안 전 총리는 2013년 3월 11일부터 2015년 6월 13일까지 제63대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명된 인사로, 약 2년 3개월간 법무 행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법무부장관 재임 당시에는 공안 검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법치주의 확립에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가 보안과 공공 질서 유지, 검찰 조직의 개혁 및 운영 효율화 등에 집중했다. 장관 시절은 정치인으로 전환되기 전 중대한 분기점이었으며, 이후 국무총리로 발탁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황교안 전 총리는 장관직 수행 중에도 정치적 중립성과 법률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공직자의 자세를 유지했다. 법무부장관 시절 추진한 정책들은 논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보수 성향을 반영한 안정 지향적 행보로 평가되며, 국가 법무 체계의 실질적 운영 능력을 입증한 시기였다. 이 기간은 황 전 총리가 행정부 요직을 경험하고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발판이 되었던 시기다.
5. 황교안 국무총리
2015년 6월 18일부터 2017년 5월 11일까지 황교안 전 총리는 제44대 국무총리로 재직했다. 특히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임하게 되었고, 약 5개월간 국가 행정을 사실상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황 전 총리는 국정의 연속성과 안정을 강조하며 혼란한 정국을 관리하는 데 주력했다. 2016년에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주요국 정상들과의 별도 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아 외교적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가 비상 상황 속에서 헌법 질서를 유지하고 내치를 안정적으로 이끈 점은 분명한 성과로 남아 있다. 당시 행정부 수반 역할을 무난히 수행한 이력은 이후 정치권에서의 영향력 확보에 큰 자산이 되었다. 국무총리 재임은 황 전 총리의 정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정 경험이었으며, 이 경험은 이후 대선 출마 결정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6. 황교안 탈당 및 부정선거 주장
황교안 전 총리는 2019년 자유한국당에 입당 후 단기간 내 당 대표로 선출되며 정계에 본격 복귀했다. 제2대 자유한국당 대표, 초대 미래통합당 대표, 국민의힘 종로구 당협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보수 진영의 중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2020년 총선에서 종로구 후보로 출마해 낙선하고,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황 전 총리는 선거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공론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특히 2021년 대선 경선에서 2차 컷오프에서 탈락한 후에는 부정선거 척결을 주요 정치적 의제로 삼기 시작했다. 2022년 당 대표 선거에서는 비윤계 중심의 정당 개혁을 주장했으나 4위에 그쳤다. 국민의힘이 부정선거 문제를 회피한다고 판단한 황 전 총리는 결국 2025년 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된다. 탈당과 부정선거 문제는 황 전 총리의 현재 정치적 정체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핵심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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