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자야 김영한 여사 길상사 법정스님 무소유

by 뉴스인타뷰 2026. 5. 26.
반응형

자야 김영한 여사 길상사 법정스님 무소유

- 자야 김영한 여사

 

자야 김영한 여사 프로필

  • 이름 : 김영한
  • 기명 : 진향
  • 호 : 자야
  • 법명 : 길상화
  • 출생 : 1917년 1월 18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 사망 : 1999년 11월 14일
  • 학력 :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 종교 : 불교
    가족 : 양부 하규일, 딸 1명
  • 직업 : 기녀 출신 사업가

 

김영한 여사는 기생 출신 사업가로, 서울 성북동의 유명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큰 부를 일군 인물로 알려졌다. 이후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에 깊은 감명을 받고 대원각 일대를 시주해 오늘날의 길상사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말년에는 불교에 귀의해 법명 ‘길상화’를 받았고, 평생 시인 백석을 그리워한 여성으로도 널리 회자됐다.

 

자야 호 유래

‘자야’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이백의 작품 「자야오가」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영한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백석이 당시집을 읽다가 직접 붙여준 호라고 알려졌다. ‘자야’는 본래 중국 동진 시대 여인의 이름이며, 멀리 떠난 임을 기다리는 슬픔과 그리움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김영한 여사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백석이 자신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후 자야라는 이름은 단순한 예명이 아니라, 백석 문학과 연결된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자야라는 이름이 핵심 소재로 활용되며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김영한과 대원각 이야기

 

한국전쟁 이후 김영한 여사는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대원각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불릴 정도로 이름을 알렸고, 정·재계 인사들이 드나드는 대표적인 고급 한식 요릿집이었다. 넓은 대지와 수십 채 건물 규모를 갖춘 대원각은 당시에도 엄청난 자산 가치로 평가됐다.

 

그러나 김영한 여사는 물질적 성공 속에서도 공허함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이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깊은 감화를 받아, 자신이 평생 일군 대원각 전체를 불교계에 시주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시가는 1천억 원대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 불교사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시주로 기록됐다.

 

김영한 길상사 창건

김영한 여사는 1980년대 후반 법정 스님을 찾아가 “많은 사람이 마음 쉬어갈 절을 만들어 달라”며 대원각 시주 의사를 밝혔다. 법정 스님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김영한 여사의 간청이 수년간 이어지자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대원각은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지금의 길상사로 새롭게 태어났다.

 

길상사는 화려한 요정이 수행 공간으로 바뀐 특별한 장소로 주목받았다. 김영한 여사는 창건 법회에서 “저 팔각정에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고, 법정 스님은 김영한 여사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렸다. 현재 길상사에는 김영한 여사의 공덕비와 백석 시비가 함께 세워져 있으며, 유해 또한 경내에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 백석과의 사랑

김영한 여사는 생전 여러 인터뷰와 회고록을 통해 시인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를 전했다. 김영한 여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30년대 함흥의 요릿집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백석이 “오늘부터 당신은 내 마누라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졌다.

 

또한 김영한 여사는 서울 청진동에서 백석과 함께 동거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고, 백석이 만주행을 제안했으나 자신이 거절했다고 회고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 상당수는 김영한 여사의 증언에 기반한 내용으로, 객관적인 사료와 기록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김영한 여사는 평생 백석을 잊지 못했다고 밝혔고, “천억 재산도 백석 줄만 못하다 말로 유명세를 남겼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