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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섭 작곡가 나이 프로필

by 뉴슈인터뷰 202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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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섭 작곡가 나이 프로필

- 이호섭 작곡가

 

이호섭 작곡가 금타는 금요일

TV조선 ‘금타는 금요일’이 대한민국 트로트계를 움직여 온 살아있는 전설 이호섭 작곡가 편을 방송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찰랑찰랑’, ‘다함께 차차차’, ‘십분내로’, ‘카스바의 여인’ 등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아 온 국민 애창곡의 탄생 비화가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이호섭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설운도의 메가 히트곡 ‘다함께 차차차’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이호섭은 “처음 작곡한 곡이 ‘다함께 차차차’였다”라며 “그 노래로 처음 집을 샀다”고 밝혀 출연진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단순한 흥행 작곡가를 넘어 한국 트로트의 흐름 자체를 만든 인물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900곡이 넘는 저작권 등록곡을 보유한 그는 지금도 방송과 강연, 후배 양성 현장을 오가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전국 노래방과 행사장, 방송 무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호섭 나이 프로필 고향 학력

이호섭은 1959년 10월 13일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2026년 기준 나이 66세입니다. 신체는 178cm, 혈액형은 O형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한국가창학회 회장과 이호섭트로트가요대학 학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 음악인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고려시가와 음악의 관계를 연구하며 대중가요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현재와 달리 그의 어린 시절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호적상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좌익 활동 혐의로 총살당했고, 이 때문에 연좌제의 벽에 가로막혀 판사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호섭은 과거 방송에서 “하루 17시간씩 공부해 사법고시에 도전했지만 연좌제로 인해 판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절망 끝에 낙동강 다리 위에서 생을 포기하려 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큰어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고, 이후 음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 절절한 인생 경험은 훗날 그의 노래에 짙은 한과 서정을 담아내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이호섭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단연 수많은 히트곡들입니다.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 ‘원점’, 주현미의 ‘잠깐만’, ‘짝사랑’, ‘추억으로 가는 당신’, 김연자의 ‘십분내로’, 이자연의 ‘찰랑찰랑’, 편승엽의 ‘찬찬찬’, 윤희상의 ‘카스바의 여인’, 강진의 ‘삼각관계’ 등 시대를 대표하는 트로트 명곡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여기에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처럼 댄스 장르 작사까지 소화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감각도 보여줬습니다. 특히 이호섭의 곡들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면서도 묘한 감정선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행사장에서는 물론 중장년층의 애창곡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방송 활동 역시 활발했습니다. KBS ‘전국노래자랑’의 단골 심사위원으로 활약했고, 고 송해 선생 별세 이후에는 임수민 아나운서와 함께 임시 진행을 맡으며 안정감 있는 진행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KBS ‘아침마당’의 ‘도전 꿈의 무대’ 코너에서는 따뜻한 조언과 현실적인 평가를 건네는 멘토 역할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노래 강의와 음악 이야기를 전하며 세대 간 소통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호섭 가요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업적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이 가요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신인 트로트 가수들의 핵심 등용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경남 의령에서 열리는 이호섭 가요제는 대상 수상자에게 이호섭 작곡가가 직접 신곡을 제공하는 특별한 혜택으로 유명합니다. 

 

여기에 장남 이채운 작곡가의 곡까지 함께 지원되면서 신인 가수 입장에서는 사실상 정식 데뷔 기회를 얻는 셈입니다. 실제로 남승민 등 여러 현역 가수들이 이 무대를 통해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남승민은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대상의 영예를 안았고, 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전국 수많은 가요제가 중단됐지만 이호섭 가요제는 명맥을 유지하며 지역 문화와 트로트 산업의 연결고리 역할을 이어왔습니다. 이호섭은 후배들에게 단순히 노래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가져야 할 자세와 대중과의 호흡법까지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요계에서는 그를 두고 ‘국민 멘토’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합니다.

 

이호섭의 인생에서 가족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장남 이채운, 차남 이재필을 두고 있으며 특히 장남 이채운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함께 가요제 수상자들에게 곡을 선물하며 트로트 세대 계승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호섭은 자신을 키워준 큰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여러 차례 방송에서 언급해 왔습니다. 세 살 무렵 입양돼 큰어머니 손에서 성장했고, 가난 속에서도 공부와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현재도 그는 운전면허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며 대중 속에서 살아가는 소탈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화려한 히트곡 뒤에는 시대의 상처와 치열한 생존, 그리고 가족을 향한 책임감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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