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아들 장호권 프로필
- 장준하 아들
장준하 아들 장호권 프로필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호권은 부친 장준하의 정신을 계승해 독립운동 선양 활동과 민주화 관련 활동을 이어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시에 광복회장 재임 시절 각종 논란과 내부 갈등에 휘말리며 사회적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장호권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안동 장씨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장준하 선생이며 어머니는 김희숙 여사입니다. 장준하가 유신체제 반대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활동했던 만큼, 장호권 역시 어린 시절부터 정치와 민주주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이름 : 장호권
- 나이 : 1949년 5월 14일생, 만 77세
- 고향 : 서울특별시
- 부모 : 아버지 고 장준하 선생, 어머니 김희숙
- 현직 :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 경력 : 제22대 광복회장, 월간 사상계 대표
- 주요 이력 : 희망시민연대 이사장,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사무총장


장호권은 이화여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진학 기회를 얻었지만 등록금 문제로 입학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군 복무를 마쳤고,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은 1975년 아버지 장준하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당시 장준하는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정부는 실족사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으로 남게 됐습니다.


장호권은 부친 사망 이후 진상 규명 활동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특히 장준하 의문사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적극 나섰고, 여러 차례 재조사 요구도 이어갔습니다. 2012년 장준하 유골 검시 당시에도 중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 두개골에서 원형 함몰 흔적이 발견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졌고, 장호권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호권 역시 부친 사망 직후 위협을 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시 괴한의 습격으로 턱 골절상을 입은 뒤 해외로 떠났고, 오랜 해외 생활 끝에 2003년 귀국했습니다. 이후 장준하가 창간했던 월간지 ‘사상계’를 2005년 복간하며 부친의 언론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장준하가 생전에 발행했던 ‘사상계’는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인 지성 잡지로 평가받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 권력 비판을 담아내며 당시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호권은 복간 이후에도 장준하 정신 계승 사업과 독립운동 선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정치 활동에도 나섰습니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대문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이후 오랜 기간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오다가 2024년 새로운미래 계열 정치세력에 합류했고, 현재는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장호권 이름이 크게 알려진 또 다른 계기는 광복회장 선출이었습니다. 장호권은 2022년 제22대 광복회장에 선출됐습니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후손과 관련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표적 독립운동 기념 단체입니다. 장호권은 취임 이후 독립운동 정신 계승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재임 기간 동안 내부 갈등과 논란도 이어졌습니다. 광복회장 선거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과 협박 논란이 불거졌고, 일부 회원들과의 충돌이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특히 권총으로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에 대해 장호권 측은 실제 권총이 아닌 모형 물건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고, 장호권 측은 항소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광복회 내부에서는 회장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이후 광복회는 내부 갈등 양상 속에서 이종찬 회장 체제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광복 80주년 기념사업 추진 문제를 둘러싸고 일부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며 다시 정치·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장준하기념사업회 역시 관련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호권은 오랜 시간 동안 ‘장준하의 아들’이라는 이름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동시에 장준하 의문사 진상 규명과 독립운동 정신 계승 활동을 이어온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광복회 논란과 정치 활동을 둘러싼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장준하 사건의 기억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점에서 여전히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