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 프로필 | 박희영 복당 불가
박희영 용산구청장 프로필


- 이름 : 박희영
- 나이 : 1961년 5월 27일생 (64세)
- 고향 : 경상남도 의령군
- 학력 :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정치학 석사
- 가족 : 남편, 아들 2명
- 현직 : 제41대 서울특별시 용산구청장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 정당 : 무소속(국민의힘 탈당)


박희영은 용산구청장 대학 졸업 이후 결혼을 하며 미국에서 일정 기간 생활했다. 미국 체류 기간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캘리포니아 지역 외환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지역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에 관심을 이어가며 정치 참여의 기반을 마련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정치 경력


박희영의 정치 활동은 지방의회에서 시작됐다. 2014년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용산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구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지역 행정과 생활 정치 분야에서 활동하며 지역 기반을 구축했다.


이후 정치 활동을 확대하며 서울시의회 진출에도 도전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후에도 정치 활동을 이어가며 중앙 정치권과의 연결을 확대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권영세 후보의 정책 특보로 참여했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또한 용산구 당원협의회에서 부동산 관련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지역 정책 활동을 이어갔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당선


박희영은 2022년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청장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선거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전국 단위 지방선거로 정치적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선거 결과 박희영은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더불어민주당 김철식 후보를 제치고 용산구청장에 당선됐다. 지방의회 경험과 지역 기반이 결합되면서 안정적인 표심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2년 7월 1일 용산구청장으로 공식 취임하며 구정 운영을 맡게 됐다. 이후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행정적으로도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지역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됐다.
이태원참사 당일 대통령 집무실 전단지 제거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용산구 행정 책임자인 박희영에게 정치적·사회적 논란을 불러온 사건이었다.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대응 과정에서 어떤 조치를 했는지를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참사 당일 밤 용산구청 당직 인력이 대통령실 주변 집회 전단지 제거 작업에 투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당시 청문회에서는 구청 당직자가 “구청장 지시사항”이라는 말을 듣고 전단지 제거 작업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희영은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용산경찰서 외사과장에게서 전화를 받았고 “구청 업무일 것 같으니 확인해 보라”고 비서실장에게 전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참사 대응보다 전단지 제거 업무가 우선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박희영 이태원참사 후 경호처 통화


이태원 참사 이후 진행된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는 박희영과 대통령 경호처 관계자 사이의 통화 기록이 새롭게 공개되며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됐다. 기록에 따르면 박희영은 참사 다음 날인 2022년 10월 30일 오전 대통령 경호처 차장의 업무용 휴대전화로 알려진 번호와 통화를 했다.


또한 참사 전날에도 같은 번호와 통화가 있었고 용산구청 비서실장 역시 해당 번호와 여러 차례 연락한 기록이 확인됐다. 이 사실이 공개되자 대통령 경호처와 용산구청 사이에 어떤 연락이 오갔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박희영은 청문회에서 통화 내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통화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참사 직후 대통령 경호처 핵심 관계자와 연락이 이어진 정황이 확인되면서 진술의 신빙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