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별세 | 정진우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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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별세


1960~7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정진우 감독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영화계와 유족에 따르면 정진우 감독은 이날 오후 8시께 서울 강남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빈소는 강남 삼성병원 장례식장이다.



고인은 두 달여 전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중 낙상 사고를 당해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이후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끝내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해온 원로 감독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최연소 감독 데뷔, 1960년대 대표 연출가로 성장


1938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정진우 감독은 스물네 살이던 1962년 최무룡·김지미 주연의 영화 ‘외아들’로 감독 데뷔했다. 당시 한국 최연소 감독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았다. 이듬해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배신’을 연출하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어 ‘하숙생’, ‘석화촌’, ‘자녀목’, ‘동춘’, ‘섬개구리 만세’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1960년대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끈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1971년 ‘동춘’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했고, 1973년 ‘섬개구리 만세’로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으며 연출력을 공인받았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9관왕


정진우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는 제1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9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을 입증했다. 이듬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역시 제2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6관왕을 차지했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1972년 ‘석화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후보에 올랐고, 1973년 ‘섬개구리 만세’도 같은 영화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1993년 칸국제영화제에서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하며 국제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영화인 권익 위해 헌신



정진우 감독은 작품 활동에 그치지 않고 영화인 권익 향상에도 힘썼다. 1967년 한국영화감독협회를 창립했고, 1984년 영화복지재단을 설립해 영화인 복지 기반을 마련했다. 1985년에는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지내며 제도 개선과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연출가로서의 성취와 함께 영화계 제도적 토대를 다지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아들, 두 딸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의 발자취는 오랫동안 영화사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