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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 서해대교 추돌사고 사망자

by 이슈인터뷰 2025.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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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 서해대교 추돌사고 사망자

-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꼬꼬무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의 시작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

2006년 10월 3일 오전 7시 40분경,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북단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전광판에는 ‘안개 조심, 시속 50km 이하 감속’ 안내가 떴지만 일부 차량은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못했다.

 

앞서가던 봉고 프런티어가 서행하던 상황에서 25톤 차세대트럭이 안개 속에서 전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과속으로 접근했고, 급제동과 동시에 핸들을 꺾다 봉고 프런티어와 강하게 충돌하면서 연쇄 사고의 시발점이 만들어졌다. 이 사고로 차량들은 1·2·3차로에 걸쳐 뒤엉켜 정차했고, 뒤따르던 이스타나 승합차가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해 후미를 들이받으면서 2차 추돌이 발생했다.

 

시야 제로 상황에서 연쇄 충돌 확대

첫 충돌 후 3분이 지나자 2차로로 진입하던 차량들이 차례로 사고지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잇달아 추돌했다. 쏘나타, 택시, 엑셀 등의 승용차가 급정거에 실패하며 뒤에서 연이어 들이받았고 운전자들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차량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이어 1차로를 주행하던 트레일러가 차 밖에 서 있던 사람과 충돌한 뒤 방호벽에 들이받으며 대형 사고로 번졌다. 뒤이어 고속버스, 와이드 봉고, BCT 차량 등이 충돌에 가세해 사고 범위가 순식간에 전체 차로로 확산됐다. 7시 49분경 노부스 방통트럭이 앞선 차량을 강하게 들이받으며 전체 차량이 앞으로 밀렸고, 7시 53분에는 25톤 화물차가 BCT 트레일러를 들이받아 조수석이 분리되는 큰 충격이 발생하며 화재의 불씨가 생겼다.

 

대형 화재 발생과 구조 지연

충돌의 충격으로 일부 화물차 엔진이 튀어나오면서 전기 배선에 스파크가 발생했고, 순식간에 8m 높이의 불기둥이 솟아오르며 차량 여러 대에 동시다발적인 화재가 번졌다. 강한 불길과 유독가스 때문에 차량 안에 갇힌 사람들은 탈출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많은 인명 피해가 이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뒤따르던 차들이 급정거하며 추가 15대가 더 들이받아 총 29중 추돌로 이어졌다. 서해대교는 전 차로가 마비돼 소방차와 구급차가 사고지점까지 접근하지 못했고, 구조대는 약 1km 구간을 장비를 들고 뛰어 진입해야 했다. 현장 도착까지 20분 이상이 소요되면서 초기 진압이 늦어졌고, 사망자 12명·부상자 49명이라는 대형 참사가 현실이 됐다.

 

후속 조치와 사회적 여파

사고 이후 한국도로공사는 교량 내 차선 추월 금지 조치를 시행했고, 2008년 1월부터 서해대교 전 구간에 구간 단속을 도입했다. 2019년에는 가변형 과속 단속 체계로 확대되며 안전 관리가 더욱 강화되었다. 사고는 명절 연휴 직전 발생해 가족 단위 희생자가 많았고, 당시 구조에 참여한 구급요원과 생존자들은 지금까지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현장의 참혹함과 구조 지연 상황을 증언하며 다시금 이 사고의 교훈을 조명했다.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는 국내 교통사고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남긴 비극으로 남아 있으며, 이후 반복된 영종대교 사고 등과 함께 교통 안전 시스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한 대표적 인재로 평가되고 있다.

 

서해대교 29 추돌사고 | 서해대교 추돌사고 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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