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별세 | 김지미 사망 원인 빈소
- 김지미 별세 사망 원인
김지미 별세 사망 원인 빈소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눈을 감았으며 최근 대상포진을 앓은 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당시 덕성여고 재학 중 명동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길에 길거리 캐스팅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일화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데뷔 직후 ‘별아 내 가슴에’(1958)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한국 영화계의 대표 여배우로 떠올랐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는 동시대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미모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칭을 얻었다. 영화계에서는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등에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내공을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여러 상을 품에 안았다.


특히 출연작이 700편에 달하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는 지금도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강렬한 기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춘향전’, ‘춘희’, ‘티켓’ 등 수많은 작품 속 김지미는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그 자체였다.
한국 영화계를 넓게 이끈 전설


김지미는 단순히 배우 활동에 머물지 않았다.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과 기획에 뛰어들었고, 영화인협회 이사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 각종 직책을 맡아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에 기여했다. 소신 있고 당찬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정치인이나 관계자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의견을 전달하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2010년에는 ‘화려한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긴 세월 동안 쌓아온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011년에는 영화 ‘영화판’에 잠시 출연하며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
큰 사랑 받아 행복했다



김지미는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천국’ 인터뷰에서 배우로 살아온 인생에 대해 “정말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무척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때는 관심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행복이라고 느낀다”며 영화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담담히 밝혔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협회 주관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며, 고인의 빈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영화의 중심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로 살아온 김지미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김지미 별세 | 김지미 사망 원인 빈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