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준 용역 | 꼬꼬무 전농동 철거 사건 이금열 다원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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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준 용역 철거 깡패
적준 용역은 철거 깡패로 1990년대 초반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재개발 현장에는 사설 용역업체가 투입되었다. 이 업체는 각목과 오함마 등으로 무장한 인력을 동원해 철거민과 상인들을 강제로 몰아냈다.
1998년 ‘적준 철거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적준은 폭력, 주거침입, 성폭행, 재산손괴 등 중대한 범죄를 수십 건 저질렀으며 피해자만 수백 명에 달했다. 살인 사건까지 보고된 바 있어 사회적 충격이 컸다. 당시 보고서는 어린이까지 인권 유린의 대상이 되었음을 밝히며, 철거 용역폭력의 실상을 고발했다.
전농동 철거 사건
전농동 철거 사건은 1997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재개발 과정 중 발생했다. 세입자와 철거민들은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갔고, 이에 적준 용역이 투입됐다. 강제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과 용역 간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으며, 일부는 망루에서 추락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건은 재개발 현장의 폭력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자행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폭력 철거가 단발적 사건이 아닌 일상화된 문제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분이 확산됐다. 사건 후 재개발 정책과 철거 절차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으며,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전농동 사건은 용산 참사 이전 한국 철거 문제의 비극적 전조로 남았다.
철거왕 이금열
철거왕 이금열은 1970년생으로 20대 초반 상경해 적준 회장의 비서로 업계에 들어섰다. 불과 5년 만에 적준 대표가 되었고, 이후 사명을 다원으로 바꿔 20년 가까이 철거 사업을 주도했다. 당시 나이 28세에 업계를 장악한 이금열은 철거용역사업의 80%를 수주하며 수백억 원대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다원은 명칭만 바뀌었을 뿐 폭력철거의 중심축이었다. 2013년 피해자 증언대회에서는 여성 상인이 포크레인 철거로 인해 돌더미에 깔린 사례 등 잔혹한 피해 상황이 공개됐다. 이러한 증언은 다원이 과거 적준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금열은 폭력적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철거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게 되었다.
대통령 올케 서양희
대통령 올케 서양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의 배우자다. 서양희는 과거 다원그룹과의 관계에서 주목받았으며, 일부 사건에서는 배경 인물로 거론되기도 했다. 특히 전농동 사건과 철거 용역 폭력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을 때, 권력층과의 연결 고리가 관심을 모았다.
서양희의 존재는 단순한 친인척 관계를 넘어 당시 철거 세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냈다. 언론은 대통령 친인척과 철거 세력이 맞닿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논란을 확산시켰다. 권력과 용역 사업의 유착 의혹은 이후에도 사회적 관심사로 이어졌고, 재개발과 철거 과정에서의 공정성·투명성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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